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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드라마 리뷰

《배트맨 대 슈퍼맨》 히어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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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영화포스터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단순한 히어로 대결 영화가 아니다. 인간이 신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때 벌어지는 불신과 상처, 그리고 죄책감을 그린 묵직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헨리 카빌, 벤 애플렉, 갤 가돗이 보여준 DC 세계관의 시작과 한스 짐머의 압도적인 음악까지 함께 살펴본다.

 

영웅 영화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품들이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딱 그렇다.

보통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하면 시원한 액션이나 통쾌한 승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도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장면 속에서 영화는 영웅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만약 인간 앞에 신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정말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도 묘하게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액션은 분명 엄청났는데, 보고 나오면 속이 후련하기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가 옳은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고, 영웅들조차 서로를 의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화려한 블록버스터인데도 어딘가 차갑다.

특히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는 너무 어둡다는 평가도 많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준 불안과 불신의 분위기가 현실과 꽤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한다. 누군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면 결국 의심하기 시작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사실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인간의 공포와 상처를 이야기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DC가 만들고 싶었던 거대한 신화의 서막

2016년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단순한 히어로 영화를 넘어, DC 확장 유니버스(DCEU)라는 거대한 신화의 문을 연 핵심적인 작품입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전작 《맨 오브 스틸》의 서사를 잇는 동시에, 이후 전개될 DC 세계관의 방대한 설계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당시 워너브라더스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맞설 견고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배트맨과 슈퍼맨이라는 DC의 상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인기 있는 영웅을 넘어 미국 대중문화 그 자체를 대변하는 아이콘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배트맨과,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슈퍼맨. 이 두 인물의 충돌은 그 자체로 거대한 테마가 될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들의 만남을 일회성 팬서비스로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훨씬 더 무겁고 철학적인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종교적 상징과 질문들이 대표적입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슈퍼맨의 존재는 현대 사회가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하는 ‘신’의 이미지와 겹쳐집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영화의 미장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의 밝은 톤과는 달리, 화면은 어둡고 무겁습니다. 도시는 먼지와 연기로 가득하며,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인물들의 지친 심경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특히 고담시의 분위기는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범죄 누아르 영화에 가깝게 연출되었으며, 벤 애플렉이 그려낸 배트맨 또한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분노와 피로감을 짊어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지점은 영웅들을 일방적인 ‘구원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세상이 어떻게 이들을 소비하고 의심하는지 냉철하게 파고듭니다. 뉴스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슈퍼맨에 대한 논쟁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향한 인간의 존경과 공포라는 모순적인 감정을 투영합니다.

 

누군가 너무 큰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인류는 그를 영웅으로 환호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바로 그 날카로운 현실의 감각을 슈퍼히어로라는 신화적 세계관 안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서늘한 갈등의 중심에,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온 배트맨을 세워두었습니다.

싸움보다 더 무서운 건 불신이었다: 영웅들이 오해하는 방식

영화는 《맨 오브 스틸》의 비극적인 마지막 전투를 브루스 웨인의 시선으로 다시 비추며 시작합니다. 무너지는 메트로폴리스의 빌딩 숲 사이로 겁에 질려 도망치는 시민들. 보통의 히어로 영화에서 도시 파괴가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소비된다면, 이 영화는 그 현장을 철저히 ‘참혹한 재난’의 관점으로 묘사합니다. 먼지 속을 뛰어다니며 무력하게 시민들을 구해야만 했던 브루스에게, 슈퍼맨은 구원자가 아닌 ‘언젠가 세상을 무너뜨릴 가장 위험한 재앙’으로 각인됩니다.

 

사실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은 단순히 누가 더 강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통제 불가능한 힘’에 대한 브루스의 불신과, 세상을 구하려 하지만 도리어 사람들의 날 선 시선에 혼란을 느끼는 클라크 켄트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입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비롯해 평생 폭력의 어두운 면만을 목격해온 브루스는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숙명을 지녔습니다. 반면 슈퍼맨은 인간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들 사회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깊은 고립감을 느낍니다.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지독하게 외로운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그 틈새를 파고드는 악당, 렉스 루터가 등장합니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기한 렉스 루터는 기존 히어로 영화의 전형적인 악당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는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하며, 무엇보다 인간 위에 존재하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오만을 투영하는 그 비틀린 열등감이 도리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영화 후반부, 마주 선 두 영웅의 대결에서 중요한 것은 액션의 화려함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그 순간, 그들 사이에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뒤엉켜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의 현실과도 무척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막연한 두려움부터 앞세우곤 하니까요. 그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우리는 대화라는 해답 대신 공격이라는 오답을 선택하곤 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이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적 파멸을, 거대한 슈퍼히어로의 전투라는 무대 위에 아주 서늘하고도 묵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영웅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인간들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배트맨보다 지치고 피폐해 보입니다. 오랜 시간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오며 몸에는 흉터가, 마음에는 깊은 그늘이 자리 잡았죠. 특히 극 중 악몽 시퀀스들은 브루스 웨인이 미래를 얼마나 처절하게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리고 슈퍼맨이라는 압도적인 존재를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여기며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외형적으로는 강인해 보일지 몰라도, 그 내면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순간보다, 홀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 고독한 표정이 더 오래 뇌리에 남습니다.

 

반면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음에도, 그 누구보다 고독한 존재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사람들과 온전히 연결되지 못하며, 세상은 그를 떠받들다가도 순식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는 끊임없이 "당신은 누구인가?", "인간 편인가, 신인가?"라는 날 선 질문들에 시달리며 점차 침묵 속으로 잠겨갑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역설적으로 가장 외로운 영혼으로 그려지는 이유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등장을 보여준 갤 가돗의 원더우먼은 영화의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킵니다. 그녀가 등장할 때 흐르던 음악과 그 신화적인 에너지는, 어둡고 건조했던 영화의 공기를 순식간에 뜨겁게 달궜죠.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원더우먼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비로소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완벽한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불안에 떨고, 서로의 진심을 오해하며, 각자의 상처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완벽하지 않은 결핍들이야말로 이들을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혹은 괴물과 영웅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완벽을 강요받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왜 신을 두려워하는가: 공포가 만든 비극과 희망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단순히 두 히어로의 무력 충돌을 전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묵직한 질문은 바로 “압도적인 힘에 대한 인간의 공포”입니다.

 

슈퍼맨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에게 도움받기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난 그 힘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영화 곳곳에 반복적으로 삽입된 뉴스 토론 장면들은 이러한 대중의 불안을 상징합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슈퍼맨의 존재를 평가하고 재단하며, 영웅조차 미디어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맙니다.

 

이러한 영화 속 풍경은 현대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순식간에 영웅으로 추대하다가도, 조금만 기준에 어긋나면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곤 하니까요. 렉스 루터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불신과 공포를 가장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대중의 공포를 극단으로 자극하여 영웅들끼리 서로를 파괴하도록 부추깁니다. 생각해보면 영화 속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파괴적인 힘을 가진 둠스데이가 아니라, 타인을 믿지 못하고 결국 서로를 몰아세우는 인간의 비뚤어진 심리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두 영웅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나 뒤늦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슈퍼맨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선택합니다. 이 마지막 선택은 단순한 영웅적 행동을 넘어, 자신을 두려워했던 인류에게 끝까지 희망을 남기려는 숭고한 결단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의 엔딩은 결코 통쾌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전투가 막을 내린 자리에는 승리자의 환희 대신,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묘한 허무함과 슬픔만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존재가 가장 인간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비로소 완성된 이 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왜 한스 짐머의 선율은 여전히 압도적인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논할 때 음악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스 짐머(Hans Zimmer)와 정키 XL(Junkie XL)이 빚어낸 사운드트랙은 단순히 배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공기 자체를 지배합니다.

 

배트맨의 테마는 묵직한 타악기와 반복되는 어두운 리듬을 통해 브루스 웨인이 평생 짊어지고 온 분노와 피로감을 고스란히 체감하게 합니다. 반면 슈퍼맨의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비극적인 톤을 유지합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임에도 그 선율 속에 깊게 깔린 슬픔은, 그가 얼마나 고독한 신으로 존재하는지를 대변합니다. 특히 원더우먼 테마는 전기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 순간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며, 지금 보아도 여전히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연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입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 특유의 슬로모션 연출은 액션을 빠르게 소비하는 대신, 장면의 미장센을 오래 응시하게 만듭니다. 덕분에 화면은 한 폭의 스타일리시한 화보처럼 느껴지며, 관객은 그 호흡의 무게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비극적 서사를 더 깊이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배트맨의 창고 액션 장면은 DC 영화사상 최고의 액션 시퀀스 중 하나로 꼽힙니다. 거칠고 현실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묵직한 타격감은 이전의 어떤 배트맨 영화보다도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생동감을 전달합니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압도적입니다. 슈퍼맨이 비상할 때 공기가 찢기는 소리나 둠스데이의 포효, 배트모빌의 진동은 스크린 밖까지 전달될 만큼 육중한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는 대사보다 화면과 음악이 가진 ‘감각’으로 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 탁월합니다. 굳이 긴 설명이 없어도, 압도적인 사운드와 비주얼만으로 관객은 인물이 느끼는 절망과 고뇌를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스토리의 복잡함은 잠시 잊더라도, 이 영화가 남기는 감각적인 전율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신이 된 영웅과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 사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박히는 것은 화려한 액션의 쾌감이 아닌 먼지구덩이로 뒤덮인 도시의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브루스 웨인이 무너져 내리는 메트로폴리스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장면은 잊을 수 없습니다. 비명과 붕괴로 가득 찬 그곳에서 영화는 영웅의 무용담이 아닌, 차라리 참혹한 재난 영화의 한복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논란을 낳았던 이른바 '마사' 장면 또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니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개봉 당시엔 호불호가 갈렸지만, 지금은 그 장면이 품은 의미가 더 깊게 와닿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름의 공유가 아니라, 평생 '괴물'과 싸워왔다고 믿었던 배트맨이 어느덧 자기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극적인 자각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묘한 침묵 또한 독특합니다. 생각보다 이 작품에는 인물들이 홀로 서서 먼 곳을 응시하는 정적인 순간들이 많습니다. 휘몰아치는 액션보다 그 고요한 공기가 더 길게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침묵 속에 인물들의 감추어진 불안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배트맨 대 슈퍼맨》이 지금도 끊임없이 재평가되는 이유는 그 '불완전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하고 매끄러운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하고 복잡한 서사는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의 힘입니다.

 

금방 보고 잊히는 수많은 블록버스터와 달리, 이 영화는 자꾸만 다시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 안에는 신의 능력을 가진 영웅들조차 어쩌지 못했던 인간의 깊은 불안과 외로움이 너무나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차가운 금속성 화면 속에서 우리 자신의 불안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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