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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드라마 리뷰

《베놈》 소란스러운 소동극 속에 숨겨진 고독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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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 영화 포스터

톰 하디 주연의 마블 영화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 리뷰. 단순한 히어로 액션을 넘어 외로움과 공생, 인간 내면의 분노를 그려낸 작품. 카니지의 광기와 베놈의 관계를 감정선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액션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보통은 화려한 시각 효과의 잔상이나 쾌감을 동반한 타격감이 뇌리에 먼저 남곤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소란스러운 폭발음이 잦아든 뒤, 오히려 묵직한 감정의 파동이 더 오래 마음을 맴도는 영화를 만나게 됩니다. 제게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Venom: Let There Be Carnage)》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마주했을 때는 그저 마블 특유의 에너지가 가득한, 정신없이 몰아치는 블록버스터를 기대했습니다. 거대한 괴물들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도시가 붕괴하며, CGI가 빚어낸 화려한 액션의 향연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장르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두운 극장 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를 때, 제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압도적인 ‘파괴’가 아니라, 그 사이를 흐르던 ‘관계’에 대한 잔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외계에서 온 심비오트 베놈과 카니지의 파괴적인 대결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가 하나의 몸을 공유하며 겪는 삐걱거림, 상대의 단점을 인내하며 기어이 맞춰가는 과정, 그리고 내면 깊숙이 숨겨둔 괴물 같은 본성까지도 기꺼이 껴안고 공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 영화는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를 어떻게 상처 입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로를 놓지 못하고 붙잡는지에 대한 서사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에디 브록과 베놈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우리는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 현실의 단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짜증을 내면서도, 결국 각자의 삶에서 상대가 사라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습. 그들의 투닥거림은 히어로물의 비장미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연인이나 가족 사이의 애증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 묘한 현실적인 투닥거림이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까지 전달될 때,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관계의 미학’을 논하는 휴먼 드라마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자기 안의 괴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 스크린 속 에디와 베놈에게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둡고 혼란스러운 도시, 그 속의 외로운 존재들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전작의 성공을 이어받아 돌아온 속편이지만, 연출을 맡은 앤디 서키스의 손길을 거치며 한층 더 독특하고 기묘한 색채를 띠게 되었습니다. 배우로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그는 전작 《모글리》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어둡고 밀도 높은 분위기를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여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다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도시의 이미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샌프란시스코는 시종일관 어둡고 축축합니다. 밤 장면이 주를 이루고, 골목은 낡고 지저분하며, 화면 위로는 검은 베놈과 붉은 카니지를 상징하는 색채가 위태롭게 뒤섞입니다. 도시 전체가 마치 등장인물들의 불안정한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이 영화는 ‘심비오트’라는 존재를 단순히 외계에서 온 생명체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숨겨진 감정과 욕망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로 활용하죠. 에디 브록 안에 기생하는 베놈은 그가 억눌러왔던 충동을 끌어내고, 카니지는 클레터스 캐서디의 폭력성과 증오를 여과 없이 분출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영화 속 괴물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이미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형태를 갖추고 튀어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키우다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무너지는 순간을 한 번쯤 마주하곤 합니다. 영화는 그러한 인간 보편의 심리를 과장되고 기괴한 방식으로 시각화합니다. 대부분의 마블 영화가 찬란한 영웅 서사와 유쾌한 액션에 방점을 찍을 때, 《베놈》 시리즈가 기묘하게 어둡고 불안한 공기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품 속 유머조차 평범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조차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있고, 특히 베놈과 에디가 투닥거리는 모습은 마치 권태기에 빠진 오래된 연인의 다툼을 보는 듯합니다. 실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그 이면에 묘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이 현실적인 관계성. 어쩌면 완벽한 영웅이 아닌, 서로의 삐걱거림을 견디며 위태롭게 공존하는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끈질기게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오래 남는 것, 텅 빈 눈빛의 외로움

이 영화의 서사는 두 쌍의 ‘기묘한 관계’를 축으로 움직입니다. 에디 브록과 베놈, 그리고 클레터스 캐서디와 카니지. 겉으로 보기엔 판이하게 달라 보이는 이 두 관계는, 사실 세상에 섞이지 못한 채 내면의 폭력성과 고립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기묘한 동질감을 공유합니다.

 

에디 브록의 삶은 여전히 정돈되지 않았습니다. 기자로서의 커리어는 위태롭고, 인간관계 역시 삐걱거리기 일쑤죠. 게다가 머릿속에서는 베놈이 쉼 없이 떠들어대며 그의 일상을 휘젓습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베놈과 평범한 삶을 꿈꾸는 에디 사이에서 에디가 점차 지쳐가는 모습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서로 없이는 온전할 수 없기에 억지로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네 오래된 인간관계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계속 부딪히고 상처 입히면서도, 결국 끊어내지 못한 채 서로를 붙들고 살아가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반면, 클레터스 캐서디는 에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고립된 인물입니다. 우디 해럴슨이 빚어낸 이 캐릭터는 등장부터 위태롭습니다. 흔들리는 눈빛과 텅 빈 웃음기 속에, 그는 세상 전체를 향한 해묵은 분노를 감추고 있습니다. 카니지라는 힘을 얻으며 그 분노가 폭발할 때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물을 넘어 재난 영화의 긴장감을 자아내지만,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거대한 파괴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파괴의 뒤편에 숨은 ‘감정의 파편’들입니다. 교도소라는 차가운 공간 속에서 클레터스가 드러내는 지독한 외로움, 그리고 에디와 베놈이 서로 등을 돌리며 겪는 일시적인 공허함. 그 순간들은 화려한 액션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결국 “누가 더 강력한 괴물인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라고 말이죠. 이 이야기는 “누가 자기 내면의 파괴적인 충동을 기꺼이 견뎌내며 공존하는가”에 대한, 다소 서글프고도 묵직한 탐구에 가깝습니다.

괴물보다 더 불안한 것, 바로 인간의 내면

이번 영화에서 톰 하디는 사실상 1인 2역에 가까운 열연을 펼칩니다. 피곤에 찌든 현실적 인간 ‘에디 브록’과 그 안에서 튀어 오르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베놈’.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둘이 묘하게 서로를 닮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숙주와 기생 생명체였던 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질투하고 삐치며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얽혀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생각해보면 베놈은 에디보다 훨씬 솔직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 단순함이야말로, 어쩌면 베놈이 우리에게 그토록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액션의 쾌감보다 그들의 투닥거리는 대화가 더 진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카니지와 클레터스 캐서디가 보여주는 인간성은 훨씬 더 위험하고 서늘합니다. 클레터스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사랑받지 못한 결핍의 상징입니다. 영화는 그가 왜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궤적을 끈질기게 보여줍니다. 그를 완전히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불행이 어떻게 파괴적인 폭력으로 치환되는지를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죠. ‘자기 분노를 정당화하기 시작한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는 현실의 공포가, 카니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극한으로 시각화됩니다.

 

여기에 슈리크라는 인물까지 더해지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고립감은 더욱 짙어집니다. 세상에서 밀려난 두 사람, 클레터스와 슈리크가 맺는 기이한 연대감은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위험하고 불안정한 관계조차 그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자 소통의 창구였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사람을 구원하기보다, 때로는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아픈 통찰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외 없이 저마다의 외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괴물을 부르는 가장 완벽한 자양분이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카니지의 파괴적인 액션보다 이들의 텅 빈 눈빛이 더 길게 잔상으로 남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 한구석에도 저마다의 외로움이 괴물이 되어 웅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인간은 자기 안의 괴물과 어떻게 살아가는가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를 겉에서만 보면 그저 파괴적인 괴물들의 대결과 도시가 무너져 내리는 요란한 블록버스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시각적 소음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가 줄기차게 질문하는 하나의 단어가 보입니다. 바로 ‘공생’입니다.

 

에디 브록과 베놈의 관계는 그야말로 ‘서로를 견뎌내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생활 방식부터 원하는 지향점까지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완벽하게 타인과 합치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괴물이라는 기괴한 설정을 빌려 과장해 보여주는 셈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역시, 상대의 결핍과 나의 결핍이 서로의 모난 곳을 아슬아슬하게 메우며 이어가는 고단한 과정이 아닐까요.

 

반면, 카니지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그는 자기 내면의 분노를 통제하거나 껴안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어두움을 증폭시키고 방치하여, 결국 세상을 파괴하는 결말을 맞이하죠. 이 대비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과연 인간은 자기 내면의 어두움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국 영화의 마지막 전투는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닙니다. ‘불완전함을 견디며 함께하려는 존재’와 ‘자기 안의 파괴성을 폭주시키는 존재’ 사이의 가치관 충돌로 읽힙니다. 승패를 떠나,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는 서늘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작은 베놈과 카니지를 동시에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타인과 삐걱거리며 화해하고, 때로는 나조차 다루기 힘든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죠.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 안의 그 괴물과 오늘도 무사히 공생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영화가 액션을 넘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 질문이 우리 삶의 가장 정직한 단면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영화, 그 이면에 흐르는 기묘한 불안

앤디 서키스의 연출은 마치 쉴 틈 없이 질주하는 폭주기관차 같습니다. 빠른 컷 전환과 휘몰아치는 액션은 관객의 혼을 쏙 빼놓지만, 그 소란스러운 껍데기 아래에는 묘하게 음산하고 불온한 기운이 줄곧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카니지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는 색감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갑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강렬한 붉은색과 깊게 내려앉은 어둠은,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 에디의 ‘억눌린 충동’과 클레터스의 ‘폭주하는 광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감정의 격전지처럼 느껴집니다.

 

사운드 또한 영화의 불안한 정서를 극대화합니다. 심비오트가 꿈틀대며 몸을 바꿀 때 들려오는 끈적하고 찢어지는 파열음, 그리고 카니지가 내뿜는 기괴한 금속성 효과음들은 신경을 자극할 만큼 공격적입니다. 어쩌면 그 불쾌할 정도의 생생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구현하고자 했던 기괴한 세계관을 완성하는 가장 적절한 장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소란 속에서도 영화의 무게중심을 묵직하게 잡는 것은 단연 톰 하디의 연기입니다. 그는 1인 2역이라 부르기 부족할 만큼 에디 브록과 베놈이라는 두 인격을 완벽하게 분리해 냅니다.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하는 대사 톤과 미세한 표정 변화는, 스크린 위에 정말로 두 존재가 실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에디를 향해 베놈이 서운함을 쏟아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관객석 곳곳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순간 저는 어딘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괴물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오히려 그 짧은 감정의 파동이 더 오래 마음에 머무는 이유입니다.

파괴의 잔상보다 깊게 남은 '관계'라는 이름의 흔적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설 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화려한 파괴의 잔상이 아닌 의외로 아주 조용한 순간들입니다. 서로의 존재에 지쳐 가던 에디와 베놈의 표정, 클레터스가 털어놓던 뒤틀린 과거의 기억, 그리고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해 길을 잃은 인물들의 서글픈 눈빛 말입니다.

 

특히 베놈이 에디와 떨어져 나와 홀로 파티장에 들어선 장면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 틈에 섞이기 위해 애쓰던 그 기괴하고도 인간적인 몸짓. 당시 극장 안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저는 그 웃음 뒤에 깔린 짙은 정적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웃긴 장면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외로운 존재의 몸부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소속’을 갈구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갈망을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고, 때로는 처참할 정도로 잘못되어 있죠. 그 어긋난 방식들이 영화 전체에 불안한 기운을 불어넣고, 그 불안감은 공포 영화의 그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외로움이 겹겹이 쌓인 끝에 결국 자신조차 낯선 괴물로 변해버리는 과정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립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가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서사의 흐름은 다소 급박하고, 캐릭터의 서사 또한 친절하지 않은 순간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투박함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화려한 CGI라는 가면을 쓰고, 줄곧 ‘인간 감정의 균열’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묘한 영화입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소동극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서늘한 외로움이 남습니다.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는 단순한 마블 액션 영화라는 틀에 가두기엔 꽤 독특하고 깊은 구석이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전투의 쾌감 사이사이로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기어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 그리고 자기 안의 분노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이죠.

 

카니지의 파괴적인 힘보다 에디와 베놈의 삐걱거리는 공존이 더 길게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 또한 인간은 견딜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이 영화는 그 모순된 외로움을 껴안고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투박한 위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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