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K드라마 리뷰 / / 2023. 12. 21. 20:20

《설국열차》 리뷰 | 끝없이 달리는 기차보다 더 무서웠던 건 인간의 계급

영화포스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얼어붙은 세계 속 계급 구조와 인간 욕망을 날카롭게 해부한 디스토피아 걸작이다.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틸다 스윈튼의 강렬한 연기와 함께 영화가 왜 아직도 계속 회자되는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도시가 멈추고 세상이 얼어붙는 영화는 많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보통의 재난 영화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살아남은 이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특히 영화 속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인간 사회 자체다. 맨 뒤칸 사람들은 평생 꼬리칸에서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살아가고, 앞칸 사람들은 와인과 스테이크를 즐긴다. 세상이 멸망했는데도 계급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설정이 묘하게 현실적이다.

보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SF 영화인데, 어딘가 너무 현실 같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건 액션이 아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창밖 풍경도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특히 커티스가 기관실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혁명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욕망과 죄책감을 통과하는 긴 복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설국열차》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다시 이야기되는 영화가 됐다.

영화적 배경 | 봉준호 감독은 왜 기차 안에 인간 사회를 넣었을까

설국열차 는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프로젝트에 도전한 작품이었다. 원작은 프랑스 그래픽노블 《Le Transperceneige》이며, 영화는 이를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 풍자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 영화에는 늘 계단이 등장한다.
《기생충》에서는 반지하와 언덕이 있었고, 《괴물》에서는 한강 아래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설국열차》에서는 그 계단이 “칸”으로 바뀐다.

뒤칸에서 앞칸으로 갈수록 공간은 넓어지고 밝아진다. 음식도 달라지고 조명도 달라진다. 심지어 음악의 분위기까지 달라진다. 이건 단순한 미술 연출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계급이 어떻게 공간으로 나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기차가 무섭게 느껴진다.
밖은 얼어붙은 죽음의 세계인데, 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착취하며 유지되는 구조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감옥처럼 보인다.

봉준호 감독은 이 밀폐된 공간을 통해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냈다. 특히 기차라는 설정이 탁월했던 이유는 “멈출 수 없음” 때문이다.
기차는 계속 달려야 한다.
멈추는 순간 모두 죽는다.

그 설정은 현실 사회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사람들도 늘 달린다. 경쟁하고, 올라가려 하고,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정작 왜 달리는지는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설국열차》를 보고 있으면 단순한 디스토피아 영화 이상의 불편함이 생긴다.
SF인데 현실 뉴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영화가 특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캐스팅 속에서도 한국적 정서가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 송강호 의 존재감은 굉장히 독특했다.

특히 남궁민수라는 인물은 혁명에도 큰 관심이 없다. 그는 단지 “문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 지점이 굉장히 봉준호 감독답다.

누군가는 권력을 원하고, 누군가는 정의를 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냥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꼬리칸에서 기관실까지, 그 긴 여정이 불편했던 이유

영화는 꼬리칸 사람들의 처참한 삶으로 시작된다.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폭력과 억압에 익숙해진 얼굴들. 아이들까지 빼앗기는 현실.

처음에는 단순한 혁명 이야기처럼 보인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진다.

앞칸으로 갈수록 세상은 화려해진다. 스시 바가 나오고, 학교 칸이 등장하고, 파티 공간까지 나온다. 문제는 그 화려함이 너무 기괴하다는 것이다.
창밖은 얼어붙은 지옥인데 안에서는 음악이 흐른다.

특히 학교 칸 장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다. 밝게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 극장 안 공기 자체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있었다.

그 장면은 단순히 충격적이라 기억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체제에 길들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커티스 역시 단순한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점점 지쳐 보인다.

혁명을 이끌지만, 동시에 자기 안에 있는 죄책감과도 싸우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밝혀지는 그의 과거는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살기 위해 사람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인간.

《설국열차》는 이런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밀어붙인다.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관객도 혼란스러워진다.
“정말 누가 맞는 걸까?”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도 완벽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도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 애매함이 영화 전체를 더 무겁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기관실 장면.
커티스와 윌포드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순간은 액션보다 훨씬 긴장감이 강하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결국 인간 사회 자체를 묻는 질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어떤 얼굴을 드러내는가

크리스 에반스 가 연기한 커티스는 전형적인 히어로처럼 등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강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늘 불안하다.

눈빛이 흔들리고, 침묵하는 순간이 많다. 특히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 같은 것이 계속 느껴진다.
이 영화는 커티스를 완벽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 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틸다 스윈튼 이 연기한 메이슨 장관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캐릭터다.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과장된 행동을 보여주는데도 이상하게 웃기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현실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

메이슨은 영화 속 가장 기괴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남궁민수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그는 혁명에도 큰 관심이 없다. 대신 기차 바깥을 본다.
그 차이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 누가 위에 설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남궁민수는 “왜 기차 안에만 있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 하나가 영화 전체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고아성 이 연기한 요나는 영화 속에서 묘한 공기를 만든다.
말수가 많지 않지만 눈빛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특히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핵심 감정과 연결된다.
희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차갑고, 절망이라고 하기엔 아직 무언가 남아 있는 표정.

이 영화는 결국 인간들이 서로 충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결국 가장 무서운 건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인간이다

《설국열차》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계급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그 구조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꼬리칸 사람들은 고통에 익숙해져 있고, 앞칸 사람들은 특권에 익숙해져 있다.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굉장히 쉽게 적응한다. 불합리한 환경에도, 이상한 구조에도, 심지어 폭력적인 시스템에도 적응해버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영화 속 학교 칸 장면이 특히 소름 끼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이들은 이미 체제를 교육받고 있다.
윌포드를 신처럼 배우며 자란다.

그 장면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 윌포드의 제안은 영화 전체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혁명조차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사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묘하게 허탈했다.
사람들은 목숨 걸고 싸웠는데, 결국 그조차 통제된 흐름이었다는 설정이 너무 냉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여기서 완전히 절망으로 끝내지 않는다.
마지막에 요나와 아이가 기차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눈 덮인 세계.
그리고 북극곰.

그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희망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시작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는다.

완전히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적이지도 않다.
마치 인간 사회 자체처럼 애매하다.

차가운 공간이 이렇게 숨 막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

《설국열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공간 연출이다.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영화는 계속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칸이 바뀔 때마다 장르가 달라지는 느낌까지 든다.

어떤 공간은 공포 영화 같고, 어떤 공간은 블랙코미디 같고, 또 어떤 공간은 잔혹 동화처럼 보인다.

특히 도끼 부대와 싸우는 장면은 아직도 강렬하다.
어두운 터널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
숨소리와 쇳소리만 남는 순간의 긴장감.

그 장면은 액션 자체보다 분위기가 기억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 특유의 리듬감도 살아 있다.
잔인한 장면 뒤에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순간이 튀어나오고, 웃기다가도 갑자기 숨 막히게 만든다.

그 감정의 온도 차가 굉장히 독특하다.

음악 역시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갑게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카메라 움직임도 인상적이다.
특히 좁은 복도를 따라 이동하는 롱테이크 장면들은 실제로 기차 안에 갇힌 느낌을 준다.

보다 보면 숨이 답답해진다.

그리고 영화 전체 색감도 굉장히 중요하다. 뒤칸은 어둡고 축축하다. 반면 앞칸은 지나치게 밝다.
그 과장된 밝음이 오히려 더 기괴하다.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불평등”을 보여준다.

이상하게 학교 칸보다 창밖 풍경이 더 기억난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화려한 액션보다 작은 장면들이 더 오래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남궁민수가 창밖을 계속 바라보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안에서 싸우고 있는데, 그는 밖을 본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늘 구조 안에서만 싸우려 한다.
더 위로 올라가려 하고,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그런데 정작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생각한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커티스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도 굉장히 무겁다.
영웅처럼 보였던 인물이 가장 끔찍한 기억을 털어놓는 순간, 영화 전체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 장면에서는 극장 안도 꽤 조용했다.
누구도 쉽게 숨을 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설국열차》는 보고 나서 바로 정리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생각난다.

왜 그 구조는 계속 유지됐는지.
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살아남으려 했는지.
그리고 정말 바깥으로 나가는 게 희망이었는지.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은 못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난다.

마무리

설국열차 는 단순한 SF 영화도, 단순한 계급 풍자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인간 사회 자체를 하나의 기차 안에 압축해 놓은 작품에 가깝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얼어붙은 세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기차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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