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K드라마 리뷰 / / 2026. 6. 2. 23:34

《나인 퍼즐》 조각난 기억 위에서 시작된 잔혹한 퍼즐게임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나인 퍼즐》은 10년 전 미해결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윤이나와 그녀를 끝까지 의심하는 형사 김한샘이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다미와 손석구의 강렬한 연기, 기억의 빈틈이 만들어내는 불안, 그리고 오래된 상처가 남긴 여운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작품을 만난다. 분명 범인을 찾는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부터 범인보다 사람을 더 의심하게 되는 작품 말이다. 처음에는 사건을 따라간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범인은 누구일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보다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정말 저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은 바로 그런 드라마다. 작품은 10년 전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윤이나와 그녀를 여전히 의심하는 형사 김한샘의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수사물처럼 보이지만, 몇 편만 보고 나면 이 작품이 단순히 범인을 찾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이 드라마가 계속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기억은 정말 믿을 수 있는가. 사람은 과연 자신이 본 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인 퍼즐》은 범인을 찾는 이야기보다 의심과 상처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시청자는 사건의 진실보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마주하게 된다.

《나인 퍼즐》은 집념의 한 형사의 끈질긴 의심에서 시작

《나인 퍼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의외로 윤이나가 아니라 김한샘이다. 보통 이런 장르의 드라마에서 형사는 단서를 추적하고 범인의 흔적을 쫓는다. 하지만 김한샘은 조금 다르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의심한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 10년 전 살인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윤이나를 단 한 번도 완전히 믿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왜 저렇게까지 의심할까. 왜 저 사람만 바라볼까. 시청자인 나조차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김한샘의 의심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청자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윤이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억울한 피해자 같기도 하다. 믿고 싶지만 쉽게 믿을 수 없고, 의심하고 싶지만 확신할 수도 없다.

 

《나인 퍼즐》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계속해서 의심할 만한 조각들을 던진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김한샘의 시선을 통해 더욱 강하게 증폭된다. 보통 범죄 스릴러는 범인을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인 퍼즐》은 범인보다 먼저 기억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특히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윤이나를 바라보면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는 것인지. 김한샘의 집요함은 바로 그 애매한 경계선을 계속 파고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 역시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되어 버린다.

윤이나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우리가 놓친 진실이 있나?

《나인 퍼즐》을 보면서 가장 많이 흔들렸던 인물은 단연 윤이나다. 보통 미스터리 드라마에는 명확한 위치가 존재한다. 피해자, 가해자, 형사, 목격자. 하지만 윤이나는 그 어느 위치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10년 전 삼촌이 살해된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라는 점에서 그녀는 분명 피해자다. 누군가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고, 그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윤이나가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은 종종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슬퍼 보이지만 어딘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고, 차갑게 보이다가도 문득 불안해 보인다. 그래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정말 이 사람은 피해자일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실이 있는 건 아닐까.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윤이나를 철저히 불완전한 인물로 그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피해자를 선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당연히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때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 기억을 왜곡하기도 하고,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기도 한다.

 

김다미의 연기가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윤이나를 단순히 불쌍한 피해자로 연기하지 않는다. 어딘가 부서져 있고, 어딘가 비밀을 품고 있으며,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 모호한 감정이 화면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끝까지 윤이나를 믿고 싶으면서도 쉽게 믿지 못한다. 어쩌면 《나인 퍼즐》은 범인을 찾는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을 믿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김한샘의 집요함으로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

가끔 드라마를 보다 보면 답답한 인물이 등장한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한 가지에 집착하는 사람. 김한샘은 그런 인물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윤이나를 의심하고, 새로운 사건이 벌어져도 결국 그녀를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몇몇 장면에서는 짜증이 날 정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답답함이 단순한 고집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였다면 어땠을까.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 설명되지 않는 기억의 공백, 계속해서 반복되는 의문점 앞에서 정말 의심을 버릴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김한샘의 행동은 비정상이라기보다 너무 인간적인 반응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한 번 놓친 사건을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집착에 가깝다.

 

손석구는 이런 김한샘을 아주 절묘하게 표현한다. 억지로 카리스마를 만들지 않고, 천재 형사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때로는 더 불편하다. 김한샘이 의심하면 시청자도 의심하게 되고, 김한샘이 불안해하면 시청자도 불안해진다.

 

사실 《나인 퍼즐》의 긴장감 상당 부분은 살인사건 자체보다 김한샘이라는 인물에게서 나온다. 범인이 누구인지 몰라서만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혹시 김한샘의 의심이 맞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이상하게도 다음 회를 재생하게 만든다.

퍼즐 조각보다 더 무서웠던 건 기억의 빈칸

《나인 퍼즐》을 보면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살인 장면도 아니고 퍼즐 조각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기억의 빈칸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꽤 믿고 산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강한 충격을 받은 순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나인 퍼즐》은 바로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윤이나의 기억 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장치가 된다. 시청자는 계속해서 그 빈칸을 채우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기억하지 못할까. 정말 잊어버린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퍼즐 역시 같은 구조라는 것이다. 퍼즐은 조각이 하나만 없어도 완성되지 않는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장면, 단 하나의 순간, 단 하나의 진실이 빠져 있으면 전체 그림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나인 퍼즐》인 것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맞추려 했던 것은 사건의 퍼즐만이 아니었다. 조각난 기억의 퍼즐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빈칸은 범인을 숨기는 장치인 동시에, 인물들이 감당하지 못한 상처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퍼즐 조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조각 자체가 아니라 그 조각이 비어 있는 자리였다.

범인을 쫓을수록 오래된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범죄 드라마는 범인을 잡는 순간 끝난다. 사건이 해결되고, 악인이 처벌받고, 피해자는 구원받는다. 시청자는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나인 퍼즐》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은 범인을 찾는 과정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인생을 잃었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고, 누군가는 과거를 잊지 못한 채 현재를 견디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서 사건이 커질수록 범인보다 사람들의 감정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처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말한다. 몇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형태를 바꾼다. 기억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나인 퍼즐》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사실 이은미 작가와 김은숙 작가는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오랜 시간 두터운 팬층의 사랑을 받아왔고,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늘 기대와 화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감정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꽤 다르다. 이은미 작가는 《터널》, 《나빌레라》, 《나인 퍼즐》처럼 사람 안에 남은 상처를 통해 감정을 만든다. 범인보다 상처를 바라보고, 사건보다 기억을 바라본다. 인물들이 무엇을 겪었는지보다 그 경험이 마음속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반면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 《태양의 후예》, 《더 글로리》처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감정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보다 인물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김신과 지은탁, 유시진과 강모연, 문동은과 주여정처럼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감정선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결국 두 작가 모두 사람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다만 김은숙 작가가 관계를 통해 감정을 끌어낸다면, 이은미 작가는 상처를 통해 감정을 끌어낸다. 그래서 《나인 퍼즐》은 일반적인 추리물과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범인을 쫓을수록 통쾌함보다 안타까움이 커지고,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시원함보다 씁쓸함이 남는다. 결국 이은미 작가가 관심을 두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퍼즐이 남긴 애잔함은 가슴을 멍하게 한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반전 때문도 아니고, 충격적인 결말 때문도 아니다. 그냥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 남는 작품. 《나인 퍼즐》이 그랬다. 보통 추리 드라마를 보고 나면 범인이 누구였는지가 기억에 남는다.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어떤 복선이 숨어 있었는지, 결말이 어땠는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나인 퍼즐》은 조금 다른 감정을 남긴다.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인물들, 진실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 그리고 끝내 완전하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 이후 한동안 멍해진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는데도 이상하게 허전하다. 진실은 밝혀졌는데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왜 사람은 상처를 놓지 못할까. 왜 어떤 기억은 평생 따라다닐까. 왜 복수는 끝나도 아픔은 끝나지 않을까. 《나인 퍼즐》은 이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생각할 시간을 남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대신 여백을 남기고, 그 여백 속에서 시청자가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 퍼즐은 단순한 사건의 마지막 조각이 아니다. 인물들의 상처, 후회,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상징하는 조각처럼 느껴진다. 《나인 퍼즐》은 화려한 액션으로 기억되는 작품도 아니고 강한 자극만으로 승부하는 작품도 아니다. 대신 사람의 마음속 가장 어두운 공간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진짜 무서웠던 것은 연쇄살인범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기억의 빈칸. 《나인 퍼즐》은 그 빈칸을 바라보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마무리하며,

《나인 퍼즐》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다. 10년 전 사건이 남긴 상처와 기억의 공백,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따라가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김다미는 끝까지 진실과 의심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윤이나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손석구는 집요한 형사 김한샘을 통해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는 범죄 때문이 아니다. 사람 때문이다. 기억 때문이다. 상처 때문이다.

 

그래서 《나인 퍼즐》을 다 보고 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살면서 외면해 왔던 나만의 퍼즐 조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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