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1은 법이 구하지 못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를 실행하는 무지개 운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제훈이 연기한 김도기, 강하나 검사, 왕따오지 에피소드, 젓갈공장 사건, 백성미의 배신과 결말까지. 왜 수많은 시청자들이 무지개 운수를 응원하게 되었는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며칠 동안 특정 장면이 계속 떠오르는 경험 말이다.
신기하게도 《모범택시》는 그런 장면이 유난히 많은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범죄 액션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택시회사를 위장한 비밀 조직이 억울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하는 이야기. 설정만 보면 흔한 사이다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런데 몇 편 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시청자가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을 너무 잘 안다.
분노해야 할 장면에서는 정말 화가 나고, 통쾌해야 할 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속이 시원해진다.
그래서 《모범택시》를 보는 동안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기보다 현실 뉴스를 다시 보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품 정보
제목 : 모범택시 시즌1
방송사 : SBS
방영연도 : 2021년
장르 : 범죄 액션 드라마
주연 : 이제훈, 이솜, 김의성, 표예진
원작 : 까를로스·크크재진 웹툰 《모범택시》
구성 : 16부작
OTT : 넷플릭스, SBS
실화 모티브 : 장애인 노동착취, 학교폭력, 보이스피싱, 웹하드 사건 등
결론부터 말하면 《모범택시》는 복수 드라마가 아니다.
정확히는 피해자가 다시 사람답게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떠올리면 화려한 액션보다 피해자들의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처음으로 소름 돋았던 건 김도기의 액션이 아니라 젓갈공장 피해자의 눈빛이었다
《모범택시》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액션을 먼저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액션이 아니다.
섬 한구석에 있는 젓갈공장.
바닷바람이 불고 비린내가 가득한 작업장.
그 안에서 피해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는 그냥 노동 착취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피해자들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내거나 도망치거나 울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맞아도 가만히 있었다.
욕을 들어도 가만히 있었다.
도망칠 기회가 와도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저러고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저 사람들은 포기한 것이다.
한 번 도망쳤다가 잡혔고.
한 번 저항했다가 더 심하게 맞았고.
한 번 도움을 요청했다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다.
드라마는 바로 그 절망을 보여준다.
그래서 김도기가 등장하기도 전에 시청자는 이미 화가 나 있다.
악당이 미워서가 아니다.
피해자가 너무 불쌍해서다.
특히 한 피해자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난다.
울지도 않는다.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그냥 포기한 사람의 눈이었다.
어쩌면 그 장면이 무서웠던 이유는 현실에서도 비슷한 눈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아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사람.
사람이 정말 무너지면 분노보다 체념이 먼저 온다.
《모범택시》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젓갈공장 에피소드는 단순한 참교육 장면이 아니다.
시청자가 피해자의 절망을 먼저 경험하게 만든 뒤 복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통쾌함이 두 배가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왕따오지가 웃겼던 이유보다 림여사가 진심으로 설렜던 표정이 더 기억난다
솔직히 처음 왕따오지가 등장했을 때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동안 무표정하던 김도기가 갑자기 말투부터 걸음걸이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
왕따오지는 우스꽝스럽다.
허세도 심하고.
과장도 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조차 속아 넘어갈 정도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왕따오지가 아니다.
림여사다.
림여사가 왕따오지를 바라보던 눈빛이다.
그녀는 진짜로 설레고 있었다.
진짜로 믿고 있었다.
진짜로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시청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관계는 거짓이라는 것을.
그리고 림여사가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범죄자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불편하다.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다.
특히 왕따오지가 조직의 돈을 역으로 빼돌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긴장감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코미디였는데 어느 순간 복수극이 된다.
그리고 림여사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표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분노.
배신감.
허탈함.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시청자는 통쾌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생각도 하게 된다.
그녀가 느낀 배신감의 일부를 피해자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왕따오지 에피소드는 단순히 웃긴 에피소드가 아니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분노로 끝나는 에피소드다.
강하나가 무너졌던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도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강하나를 잊기 어렵다.
특히 그녀가 처음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을.
처음 강하나는 확신에 차 있다.
법은 완벽하지 않지만 결국 법이 정의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지개운수를 추적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실에서 누군가가 스스로 판사가 되고 집행자가 되기 시작하면 사회는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시청자도 어느 정도는 강하나의 말을 이해한다.
그런데 사건들이 반복된다.
피해자는 울고.
가해자는 빠져나가고.
법은 절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강하나 역시 그 현실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내가 가장 기억하는 장면은 그녀의 눈빛이 처음 흔들리던 순간이다.
분노라기보다 혼란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믿어온 것이 정말 맞는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피해자는 왜 계속 고통받는가.
그 질문들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장면 이후 강하나는 더 이상 단순한 검사 캐릭터가 아니다.
시청자 대신 질문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모범택시》는 단순한 참교육 드라마에서 멈추지 않는다.
김도기는 복수를 보여준다.
강하나는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둘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아직도 기억된다.
우리는 왜 무지개운수를 응원하게 되었을까
결국 《모범택시》의 성공은 액션 때문만이 아니다.
김도기 때문만도 아니다.
사람들이 무지개운수를 응원한 이유는 피해자들 때문이다.
억울하게 울던 사람들이 다시 웃기 시작한다.
절망하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그 모습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복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좋아한다.
다만 현실에서 정의가 너무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모범택시》 같은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시즌1 결말에서 무지개운수는 흩어진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느낌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여전히 피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즌2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범택시》는 결국 복수 드라마가 아니다.
피해자를 잊지 않는 드라마다.
그래서 시즌이 끝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김도기의 택시를 기억한다.
어쩌면 우리가 기다린 것은 복수가 아니라 누군가 내 억울함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